무수가 열세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몸이 쇠약했던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인수와 무수 형제는 금오산 기슭 아버지의 묘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이를 본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가 착하고 어진 성품을 가진 것을 알았다.

그는 효심이 지극했다. 어릴 때 부터 하찮은 물건을 얻더라도 반드시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다.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산에서 나는 열매를 따오기도 했다. 꼴도 베고 나무도 하며 집안일을 거들었다. 아버지가 돌아 가지고 가세가 더욱 기울자 무수는 집안일은 물론 어머니를 봉양하는 일을 힘껏 도왔다.

삼년상을 마친 후 그는 다시 활 쏘는 일에 힘을 썼다. 칼과 창을 쓰는 법도 익혀 나갔다. 말을 타고 하는 무예인 마상재도 배웠다. 그는 무예를 할 때가 가장 신나고 힘이 솟았다.

형 인수는 동생에게 무예만 익히지 말고 글도 배울 것을 권했다, 훌륭한 장수가 되려면 무예만 익혀서는 안 된다고 일러줬다. 특히 자신의 힘만 믿고 막무가내로 아이들을 몰아 붙이는 무수가 그는 못내 안타까웠다. 그래서 동생에게 삼국지연의 같은 책을 줘서 읽어보게 했다. 그러자 동생도 그 소설에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책을 읽었다. 뿐만 아니었다. 무수는 예전과는 분명 다르게 변해 갔다. 이를 본 형은 그를 응원했다. 형의 든든한 지원 덕택에 무수는 신이났다. 그는 날마다 활을 쏘고 칼과 창을 쓰는 법을 연마했다. 한편으로 글도 열심히 배웠다. 모르는 게 있으면 형에게 물어 보았다. 그의 어머니도 그가 무예를 더욱 열심히 익혀 훌륭한 장수가 되기를 바랐다. 지금도 그가 태어났던 옛터에는 말 달리던 장소가 남아있다. 하동군 금남면 경충로에 가면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무수는 열아홉 살에 향시 초장에 합격했다. 향시는 지방에서 치르는 과거 시험으로 사흘간 치르는 시험에서 첫날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당시 무수는 무과시험에 응시했다. 이웃 고을인 고성현에서 치른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형이 별세했다는 기별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앞서 무수가 과거 시험을 치르려고 하자 형 인수도 동생을 응원하러 함께 고성으로 떠났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형이 갑자기 병이 나서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형의 병세가 악화되어 끝내 숨지고 말았던 것이다. 무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누구보다 자기를 아끼고 보살펴 주던 형이었다. 그런 형이 죽었으니 그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너무나 컸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형의 장례를 치른 뒤였다. 무수는 ‘나 때문에 형님이 병을 얻어 끝내 돌아가셨다. 내가 시험을 치르는데 도와 주려다가 결국 이렇게 됐다. 그런데 나는 형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형님이 살아 있을 때 약 한첩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실 때 작별 인사도 못했으니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있단 말인가. 이런 마당에 무예수련을 해서 무엇하겠는가’라며 통곡했다.

그는 형님이 돌아가신 것도 결국 자신이 무예를 닦은 일 때문이라며 슬퍼했다. 무수는 열여덟살이 되자 관례를 치렀다. 관례는 남자가 성년에 이르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하던 전통 의례다. 유교에선 원래 스무살에 관례를 하고 그 후에 혼례를 하였으나 조혼이 성행하자 앞당겨 행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의 풍모는 씩씩하고 뛰어났다. 키는 그 나이 또래보다 한 뼘은 더 컸다. 말소리는 큰 종소리와 같았고 휘파람 부는 소리는 10리 밖까지 들렸다. 눈빛은 광채가 났다. 후에 그가 조정에 나갔을 때 선조는 그를 일컬어 범이 잠자는 용모라고 했다.<다음호에 이어짐>